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려 말 왜구의 침입 (문단 편집) === 1384년 ~ 1387년 === 전 해에 관음포로 침공한 왜구를 포함해 내륙 지역으로 끈덕지게 침입 해 왔던 왜구는 1384년에는 비교적 약해진 모습을 보여준다. 2월 경 왜구는 진포에서 잡은 부녀자 중 25명을 돌려주더니, 거진 반년이 지난 7월에나 공세를 펴기 시작했다. 내륙에 침공해 왔던 왜구의 일부였는지 몇몇 왜구가 충청북도와 전라북도 부근에서 어슬렁 거리더니, 이후 황해도 주변에서 조금 깔짝거리는 정도에 머문다. 또 12월에는 몇년 전만 해도 자기 제 집 처럼 드나들던 인천 앞바다에 들락거리던 왜구가 정말 간만에 나타났는데, 개경을 벌벌 떨게 하던 [[포스]]는 어디가고 해도만호(海道萬戶) 윤지철(尹之哲)에게 당하고 잡은 포로 80여명을 토해내는 굴욕을 당했다. 이후 1385년에 몇몇 지역에서 어슬렁 거리던 왜구는 9월 경 난데없이 '''[[함경남도]] 함주(咸州)'''에 출몰했는데, 그 규모도 '''150여척''' 이나 되었다. 정말 밑도 끝도 없는 공격에 함주ㆍ홍원(洪原)ㆍ북청(北靑)ㆍ합란북(哈蘭北) 등이 휩쓸리고 백성들이 학살되었는데, 이에 [[심덕부]], [[정승가]](鄭承可) 등이 싸웠지만 패배해서 여타 장수들이 모두 달아나는 판에 [[심덕부]] 혼자 적에게 달려들다가 죽을 뻔 했지만 자신의 휘하였던 [[유가랑합]](劉訶郞哈)이 도와줘서 목숨만 건질 수 있었다. 그러자 조용히 있던 '''[[이성계]]가 출전을 자원했다.''' 사실 당연한 일로, 동북면은 이성계의 정치적 기반이며 경제적 기반이자 군사적 기반인 곳이다. 그런 곳에서 왜구가 분탕질을 치고 있는데 개경에서 잠이 올 리가 없었을 것이다. 이성계의 자원은 자신의 기반을 지키기 위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. 당시 왜구는 산에 주둔하여 버티고 있었는데, '''이성계 군단의 대라(大螺)[* 소라로 만든 악기.] 소리를 듣자 그 소리만 듣고도 이성계가 왔다며 벌벌 떨었다.'''[* 이성계 군단의 대라 소리는 일종의 --[[시그니쳐 사운드]].-- [[트레이드 마크]]로, 황산대첩 당시도 이 소라 소리로 군대를 수습했다는 기록이 있고 [[위화도 회군]] 이후 개경 전투에서도 대라 소리를 들은 개경 주민들이 이성계가 왔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.] 그렇게 양군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성계는 백여명의 기병과 함께 앞으로 나가더니, 그대로 상에 걸터앉아 쉬었다. '''즉 양 군대가 서로 대치하는 중간에서 태평하게 앉아 있었던 것.''' 한참을 그렇게 영문 모를 짓을 하던 이성계를 양쪽 군대가 숨죽이며 지켜보는 와중에, 이성계는 다시 일어나 슬슬 돌아가려는 듯 말에 오르려고 하다가 갑자기 확 돌아 '''백 보 거리에 떨어진 나무에 화살을 세 번 쏘아 세 번 다 명중시켰다.''' 왜구들은 이 퍼포먼스를 보고 경악하고 있는데, 이성계는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시켜 적에게 이렇게 전하도록 했다. '''"이성계가 여기에 왔다. 후회하고 싶지 않으면 어서 항복해라!"''' 이에 왜구를 이끌던 우두머리는 일단 그 자리에서는 '''"명령대로 따르겠다."''' 고 엉겹결에 둘러대고는 자기들끼리 어떻게 해야 할지 [[백분토론|논쟁을 벌였다.]] 그렇게 경계가 허술할 때 이성계는 복병을 준비하고는, [[이지란]](李之蘭), [[조영규]](趙英珪), [[고여(고려)|고여]](高呂)를 시켜 적을 유인하게 했다. 이에 왜구 수백여명이 낚여 오자 이성계도 거짓으로 패배해서 도망치는 척을 하다가, '''갑자기 뒤로 돌아 공격을 퍼부어''' [[뉴스데스크 게임 폭력성 실험 사건|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]] 왜구를 급습했다. 이렇게 맹공을 당한 왜구는 그야말로 처참하게 유린되었다. ~~[[이 구역의 미친년은 나야|이성계 : "어딜 내 구역을 넘봐, 건방지게."]]~~ 1386년에는 왜구가 간만에 쥐뿔도 보이지 않았고, 1387년의 경우에는 향상된 고려 수군의 전력에 자신감을 얻은 [[정지(고려)|정지]]가 "[[일본]]의 모든 백성이 왜구인 것은 아니고, 핵심은 [[대마도]]와 [[이키 섬|일기(一岐)]] 지역이다. 이 곳을 원정해서 쳐야 한다. 지금의 수군은 과거 몽골과는 수준이 다르다."며 원정 공격을 주장하기도 했다. 이는 나중에 [[대마도 정벌]]의 복선이 된다. 이후 10월 무렵 왜구가 충남 지역을 공격했고, 12월에 전북 지역이 공격을 받았다. 그러나 이전의 모습과는 달리 거의 위협이 사라진 듯한 모습이었는데……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